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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의 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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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허깅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12-27 17:54 조회3,386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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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수필) 사장의 자격 
 
 사장의 자격이란 무엇일까? 리더십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장의 역할을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사장이 될 만한 사람이 누군인가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고자 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내 남편이 한 회사 사장이 된 스토리와 그 배경에 대히 관찰 카메라처럼 있는 그대로를 말하고자 함이다.

 남편이 전 직장에 다니기 시작한때는 석사를 졸업하는 해인 1월인가 부터이다. 나는 늦은 나이에 학부를 졸업하고 2002년 3월부터 아산병원 미생물학교실에서 의과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었다. 남편의 직장은 아산병원에서 태동이 되었기에 남편도 연구원이란 타이틀로 아산병원내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운명적 만남은 거기서 시작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나는 내 삶에 바빠 남편의 하는 일이나 회사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주 나중에, 나중에 들은 바로는 일본에 있는 교또대학에 박사과정이 합격되어 등록금과 약간의 생활비를 받기로 하였지만, 시부모님의 반대로 갈등하다가 한국에서 박사과정을 하기로 하고, 잠깐 아산병원내에 만들어진 조그만 회사에 월급여 칠십만원 정도로 첫직장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무렵 연애하던 시기에 연구원에서 정식 직원으로 채용이 되었다고 다소 급여가 올랐다고 흡족해 하는 남편의 이야기를 아산병원 맞은편 뚝방길을 걸으며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세상 물정 몰라 남편이 대기업에 미치는 수준이라고 해서,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었는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학벌에 비해, 석사때  여러가지 실험을 하고 논문을 내고 하면서 엄청난 실력에 비해 터무니 없이 적은 월급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결혼을 하고 남편은 정말 열심히 일한 것만 기억에 남는다. 결혼하고 4년까지 애가 둘이 되도록 남편은 밤낮없이 휴일도 거의 쉬지 않고 일했다.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연차를 거의 쓰지 않는 것과, 육아와 가사를 거의 내가 도맡아서 해야 하는 걸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생활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셋째가 태어나면서 부터는 그도 나에게 미안했던지 아니면 나이를 드니 아내를 배려하려 했던지, 그게 아니면 일중독에서 조금 벗어났는지는 모르겠으나 암튼 애가 셋이 되면서 휴일엔 가능하면 집에서 육아를 도와주기 시작했다.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3월1일 쉬는 날이면 여지없이 연구보고서를 써야한다고 회사를 나간 것이 가장 인상깊게 기억에 남는다. 이유는 아마 매번 그 무렵이 연구보고서를 써야 하는 시기였기에 동일하게 반복되어서 내 뇌리속에 남은 것 같다. 그 외에는 주 4일 이상은 향상 일 때문에 늦고 1일 정도는 회식때문에 늦은 기억이 난다.
 
그래서 내 신경은 늘 날카로웠고, 남편에 대해서는 늘 불만족스러운 기억이 많다. 기억의 오류라고 하기에는 구체적인 증거가 있다. 급여문제였다. 가끔 나는 불평섞인 말로 누가 보면 연봉 4-5천 받는 줄 알겠어~ 대기업직원들이야 연봉이 많이 밤늦게까지 일하고 휴일에도 일한다지만, 당신은 월급도 작으면서 대기업직원들 마냥 일하느냐고  감정섞인 소리로 불평불먄했던 기억들이 많다.

 또한 그는 한 직장에서 한 번도 다른 회사에 한 눈을 팔지 않았다. 내 남편이 워낙 성실한데다가 오지랖이 좋아서 누가 무슨 부탁을 하면 자기 일처럼 성심성의껏 일을 처리해 주었기 때문에 내 남편은 타 회사 사장들이 탐을 낼 만한 사람이였다.
 
그래서 스카웃 제의도 몇번 왔고, 실제로 만나기도 한 걸로 안다. 나는 아내된 자로 살림을 도맡아 하면서 재정을 여기저기로 나누어 생활하다보니, 스카웃제의는 제법 구미가 당기는 것이였고, 실제로 나는 남편에게 월급 많이 주는 곳으로 옮기라고 주문하기도 했었다. 그때마다 남편은 어딜 가든 직장은 똑 같아 그곳에 가면 또 다른 스트레스가 기다리고 있다고, 사람은 돈 보고 직장을 따라다니면 안된다고 하면서 나의 요구를 번번히 거절했다.
 
그리고 그는 한 직장에서 11년을 일하는 동안 직원으로 일하기 보다는 어쩜 그 회사 주인의 마인드로 일했던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연차를 거의 쓰지않고 일을 했다. 내 기억으로는 많이 쓰면 4일 정도 썼던 기억이 난다. 두번째는 2-3년마다 연봉협상할 때, 절대 연봉에 대해 협상하지 않고 회사 방침에 따랐다. 나는 늘 불평하면서 연봉 좀 올려 달라고 하라고 하면, 남편은 회사 사정 뻔히 아는데 어떻게 연봉을 올려달라고 하냐면서 회사를 먼저 생각했다. 마지막 이사 직책을 달때까지 10년 정도 회사를 다니고 정말 최선을 다해 일해서 국내최초로 인조혈관 개발도 성공한 사람치고는 정말 인색할 정도로 박봉으로 살았다.
 
그래도 그의 입에서는 늘 회사가 우선인 사람이였다. 돈 보다는 회사 사정을 먼저 헤아리는 사람 됨됨이를 가진 사람이였다. 한 직장에서 우직하게 한 우물을 팔며, 한 눈 팔지 않고, 돈에 눈이 어두워져서 다른 회사로 옮기지도 않고 제 자리를 지킨 내 남편의 그 회사에서의 결말은 그 회사 사장의 강력한 지지로 지금 회사의 대표이사가 된 것이다.  사장이 된것이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이, 우리가 뭔가를 투자를 하지 않아도 이전에 다녔던 회사 사장의 지지와 1명의 타회사 사장과 1명의 의사선생님의 지지를 받아 대표이사로 승인을 받게 된 것이다.

내가 이렇게 구구절절 내 남편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회사에 다녀보면서 내 남편 같은 마인드를 가진 사람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내 남편이 사장이 될 수 밖에 없는 재목이였다는 걸을 발견하게 되었다. 직원의 마인드로 일하는 사람과 사장의 마인드로 일하는 사람이 명백히 나누어져 있고, 직원은 직원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와 사장은 사장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내 남편은 사장이 될 수 밖에 없는 인품이였고, 나는 그런 그가 자랑스럽다.

 

댓글목록

키팅님의 댓글

키팅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순수한 연구가의 모습이네요.
다른 것들 보다는 연구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신 분 같아요.
아내의 입장에서는 힘든 부분도 있을 법하지만 남편을 믿고 지지해주시는 모습도 보기에 좋습니다. 훗날 남편분의 자서전을 허깅유님께서 정리하셔서 써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반드시 사업의 안정화를 이루셔서 꼭 성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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