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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카사블랑카의 왈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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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러블리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11-17 20:06 조회15,791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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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털이 쏟아지는 꿈을 꾸었다. 백합의 꽃잎 같은 새하얀 깃털들이 솜털을 간질이다가, 샴페인 색 같은 연분홍색 빛에 물들어 달달한 취기를 품고 있었다. 깃털이 아닌 꽃술인가. 달달하면서도 강렬한 향기도 품고 있었다. 평소에는 박자를 잘 타지 못하는 나지만, 꿈속에서만큼은 깃털이 쏟아지는 리듬을 따라 몸이 유려하게 움직인 것 같았다. 요즘은 나이트 브래지어를 입지 않으면 잠이 오지를 않는다. 잠 잘 때 가슴이 퍼지는 것을 방지해주는 수면용 특수 속옷인데, 찾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꿈속에서 부드러운 깃털을 맞으러 이리저리 돌아다녔는데도 가슴은 나이트 브래지어 속에 쏙 담겨서 옆으로 퍼지지 않았다.

눈을 뜬 곳은 내가 사는 오피스텔의 접이식 침대가 아닌 매장 사무실의 소파이다. 웨딩속옷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져서인지 새벽까지 피팅 살롱을 떠날 수가 없다. 본사에서 온 상품들을 체크하거나 예약 고객들이 전화상담 때 알려준 간단한 신체사이즈로 어느 라인이 어울릴지 유추하고 몇 가지를 미리 골라놓아야 한다. 고객관리에도 소홀할 수가 없다. 홈페이지에 올라온 문의 글이나 후기 글에 정성껏 답글을 남겨줘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블로거들의 후기 게시물에 감사댓글을 달아 주는 식으로 계속 소통해야 한다. 요즘 블로그 운영자의 입소문이 여간 무서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0시가 지난 시각, 피팅 살롱은 닫아도 2층 사무실에서 택배박스를 뜯고 노트북을 만져야 하기 때문에 잠실 오피스텔까지 갈 짬이 나질 않는다. 논현동에서 잠실은 그리 먼 거리는 아니지만, 접때 밤 운전을 하다 피곤한 나머지 집중력이 잠깐 떨어진 사이에 가벼운 접촉사고가 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주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 벽장 속의 내 작은 여자들이 차가워질 것 같다.

1층의 피팅 살롱에 내려가 보니 지혜 씨는 벌써 출근해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르바이트생이었던 지혜는 본사에서 매니저 교육을 받고 있다. 다른 매니저 교육생들에게 우리 매장 칭찬, 덤으로 점장인 내 칭찬까지 해서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

“지혜 씨, 이게 뭐야? 백합이 꽃송이가 진짜 크네.”

“아. 카사블랑카라는 품종이에요. 저희 언니가 플로리스트인데 우리 가게에 장식하면 좋을 것 같다고, 예쁘고 향기 좋은 아이들만 골라서 보내줬어요.”

지혜가 선사해 준 백합의 향기 덕분에, 졸음이 조금 남아 있어 희미했던 정신이 싹 달아났다. 아침시간은 예약이 적어서 비교적 한산하지만 오늘은 아르바이트생 면접이 있다. 면접을 보겠다고 연락을 준 사람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한다는데 오늘이 휴강일이라 했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 흔히 그렇듯 월요일 아침이 비교적 여유로운 시간대이기 때문에 이 시간으로 잡았다. 최근 맥시브라가 웨딩플래너 업체와 제휴를 맺어서 일이 더 늘어나서 사람을 하나 더 쓰기로 했다. 설명회 때 전국 지점의 피팅 매니저들과 프레젠테이션 준비다 뭐다 하며 정신없던 나날은 지나갔지만 이제 예비신부 고객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지혜 씨도 곧 매니저가 되니, 간단한 일을 도와줄 아르바이트생이 있으면 좋을 것이다.


유리문 너머로 한 여자가 보였다. 단정하게 틀어 올린 머리에 하늘하늘 가벼운 발걸음. 다소 야시시한 속옷을 입고 쇼윈도 앞에 선 마네킹들에게도 미소를 살짝 보여주는 여유까지 갖고 있었다. 꼿꼿한 자세와 흐트러짐이 없는 걸음걸이는 마치 <탈리스만>의 여주인공 물의 님프 같았다.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보통 면접을 보러 오는 사람의 첫인사와는 달랐다. 전에 찾아왔던 손님인가. 의자에 앉아서도 반듯한 허리와 목선을 유지하는 태가 보통 여자와는 다른 아우라가 느껴져서 낯설었지만 조곤조곤하면서도 통통 튀는 목소리가 어쩐지 익숙했다.

“저예요. 스완 레이크(Swan Lake).”

이제야 기억났다. ‘스완 레이크’는 맥시브라 인터넷 쇼핑몰에서 그녀가 쓰는 닉네임이다. 제품마다 1위 리뷰로 글이 올라와 있어서 눈에 확 띄었다. 그녀는 오래전부터 보정속옷 라인을 꾸준히 구매해왔고, 후기를 꼼꼼히 쓰는 것도 잊지 않았었다. 모든 리뷰 글의 첫머리가 택배 상자 사진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매장에서 피팅을 받지 않고 온라인으로만 구매를 하는 듯했다. 그녀 또한 내 블로그에 자주 방문해서 댓글을 달아주었고, 대학 시절에 썼던 시나 소설에 감상평을 남겨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녀 덕분에 다 쓰러져가던 블로그에 방문자의 온기가 조금이나마 돌아 따뜻해졌다.

이 달의 우수 리뷰어 이벤트 때 그녀와 처음으로 대면했었다. 피팅룸에 들어간 그녀는 미색 재킷과 살짝 분홍빛이 도는 블라우스를 벗어 내렸다. 70G컵. 나랑 같은 크기였지만 발레리나 치고는 상당히 큰 사이즈이다. 가슴 말고도 그녀의 몸은 여느 발레리나와는 달랐다. 무용 전공 치고 살짝 발달한 골격에 발레로 단련된 잔 근육까지 붙어 있어 탄탄해 보였다.

“졸업하고 현역으로 활동을 안해서 살이 좀 쪘네요.”

살이 쪘대도 괜찮았다. 전체적으로 풍만한 곡선미가 살아 있는 몸이었는데, 나는 그 선이 너무 아름다워 눈을 뗄 수 없었다. 육감적인 발레리나에 대한 신선함인지, 무의식 속에서 미감을 관장하는 세포가 고개를 들었기 때문인지 보들보들하고 뽀얀 속살을 보면서 그 찹쌀떡 같은 피부를 한 입 베어물고 싶었다. 덜덜 떨리는 손이 살결에 돋아난 솜털을 스칠 때 그녀가 놀라면 어쩌나 조마조마했다.

“그거 알아요? 발레리나들은 춤출 때 안에 속옷을 입지 않아요.”

사이트의 우수 리뷰어였던 그녀가 브래지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일에 몸담고 있다는 것은 생각해 보지도 못했다. 마치 신발을 신지 않고 사는 원시부족에게 신발을 판 유능한 사원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자신을 ‘발레리나’라고 소개하자 가슴 정중앙이 뜨거워졌다. 굴곡이 뚜렷한 체형인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과 약간의 질투? 내 몸과는 상반된, 여리여리하고 가슴과 둔부 같은 덩어리 없이도 자태만으로 고운 체형을 항상 부러워했던 터였다. 오래 꿈꿔온 작가의 꿈을 잠시 내려놓고 다른 길에 발을 들인 후로 더 심해진 것 같았다. 피팅을 하면서 수많은 여자들의 몸을 살펴보는데 발레리나의 몸은 똑바로 살피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손수 피팅해 준 그녀가 발레리나였다니. 중고등학교때만 해도 무용전공을 하는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어울리며 다른 아이들에게 쉽게 곁을 내어주지 않았는데, 무용을 하는 사람과 제대로 된 독대해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고용주인 내가 면접을 보는 사람보다 더 굳어 있었다. 일하는 중에 집중이 흐트러진 적은 햇병아리 시절 이후로 오랜만이었다.

“저 내일부터 출근하면 되나요?”

그녀의 또랑또랑한 목소리에 잡생각들이 한 순간에 달아났다. 면접자 이름은 하나리, 현재 하고 있는 일은 무용학원 파트 타임 강사…….

“클래스 시간이 유동적이라 하셨죠? 그럼 매일 아침마다 수업시간 미리 공지해주세요. 그 시간에 맞춰서 출근하시면 돼요.”

면접이 끝나고, 그녀는 들어올 때의 걸음걸이로 사뿐사뿐 하늘하늘 걸어 나갔다. 그때는 발레리나 치고 살짝 살집이 있어 보이는 몸이었는데, 다시 살을 뺐는지 몸의 선이 더 날렵해져 있었다. 단정히 틀어 올린 머리 아래에 뽀얀 목선이 보였다. 직각으로 떨어지는 어깨선은 너무 좁지 않았기에 가슴과도 비례가 잘 맞았다. 그리고 가슴에 비해 가느다란 팔. 대개 큰 가슴을 지닌 여자들은 상체 골격이 발달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어깨와 팔뚝도 함께 발달하기 마련이다. 살롱을 찾는 고객들 중에서도 자주 봤었다. 그래서 가슴이 큰데 팔이 가늘면 칼을 댔다는 오해를 쉽게 받곤 한다. 허나 발레를 하는 그녀가 돈을 들여서까지 몸에 사족을 붙였을 리는 없다. 나 또한 팔에만 유독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인데, 나와 같은 사람을 한명 더 보게 될 줄은 몰랐다.

“하나리…….”

알사탕을 혀로 굴리듯 그녀의 이름을 굴려보았다. 꽃잎에 떨어진 이슬 같은 이름, 부드럽고 하늘거릴 것만 같은 이름. 백합의 꽃잎을 닮은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

나리 씨를 만나기 전까진 내가 전생에 윌리들과 춤추다 죽은 힐라리온이었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나와 발레는 아무런 접점이 없을 것만 같은데, 왜 이리 깊게 박혀있는지. 아주 어렸을 땐 TV에서 발레 하는 장면을 봐도 발끝으로 서는 것이 신기하기만 한 정도였다. 지방 도시에 제대로 된 발레공연은 거의 없다시피 했고, 무료로 무용학원 발표회를 본 게 전부였다. 오히려 한국무용을 더 좋아했었다. 5살 유치원 학예회 때 연지곤지와 족두리가 너무 예뻐서 꼭두각시 팀이 되길 바랐는데 다른 팀이 되었다. 3년이 지나 초등학교 1학년 때 그 작은 꿈을 이뤘다. 예전에는 학교나 유치원 학예회에서 막내 학년 아이들의 꼭두각시 공연은 어딜 가나 단골 레퍼토리였으니까. 반별로 하나씩 뽑는데, 두 친구를 제치고 내가 뽑혔다. 순서가 일찍 끝나서 다른 공연도 봤는데, 방과 후 발레 클래스의 공연이 두 차례나 있었지만 별 생각이 없었고 오히려 한국무용 클래스의 부채춤 족두리가 더 탐이 났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2학년 때부터 방과 후 교실에서 수강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그 중에 발레 수업도 있었지만 신청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정규수업이 다 끝났는데도 굳이 학교에 더 남아있고 싶지는 않아서였다. 그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 하나가 발레를 신청하겠다고 했다. 아파트 같은 라인에 사는 아이였는데 우리 집이 신도시로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어 서로의 부모님이 묶어주어서 같이 다니게 된 사이였다. 다소 약삭빠른 편이었던 그 아이는, 변두리 동네에서 이사 온 물러터진 나를 은근히 견제하는 눈치였다. 방과 후 클래스의 발레 수업이 시작되고 나서, 반에서 발레를 배우는 아이들은 그들끼리 어울렸다. 우르르 몰려서 내가 지나갈 때마다 흘끔거리며 자기네들끼리 킥킥거리는 게 어쩐지 이상하다 했는데, 역시나 불길한 예감은 한 번도 틀리는 적이 없다.

“예쁜 척 하지 마.”

급식실로 내려가는 줄을 섰을 때, 내 뒤에 선 발레부 멤버 하나가 날 쿡 찌르며 한 마디를 뱉었다. 9년을 살며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었다. 내가 입고 다니던 옷은 공주풍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뛰어 노는 걸 좋아해서 치마를 입으면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이유로 평범한 바지와 티셔츠만 입어야했다. 머리도 제멋대로 뻗치는 반곱슬이라 다양한 머리모양을 하기 까다로운 편이라 한 갈래로 묶은 포니테일만 고수했다. 거기다 그 무렵에 근시가 찾아와서 안경까지 썼다.

집안에 남자형제가 많아 남자들이 익숙했기에 가끔 놀았던 것이지, 특별히 남자애들한테 끼를 부린 것도 아니었고 선생님들은 그저 날 예뻐해 주셨기에 싹싹했던 것뿐이었다. 내가 먼저 외모나 옷 스타일에 대해 언급하고 자랑한 적도 없었던 것은 물론이다. 그날 급식소 문턱에서 앞 반부터 선 줄이 줄어들 생각을 않자, 지루한 나머지 엄마가 화장하는 것을 따라 해보고 싶어 파운데이션을 바르듯 얼굴을 톡톡 두드리고만 있었는데, 생각 없이 한 행동이 하필 그 아이의 시야에 걸린 것이었으며 그 행동 하나만으로 공주병 비슷한 걸로 찍힌 것이다. 그 이후로 발레부 아이들은 툭하면 내 외모를 가지고 시비를 걸거나 타박을 주었다.

“네가 예쁘다고 생각해? 입술은 두껍고 앞니도 이상하게 생긴 게!”

그들은 내 가장 아픈 콤플렉스까지 건드렸다. 다른 치아는 영구치가 정상적으로 났지만 윗니 2개만은 말을 곱게 듣지 않았다. 비뚤어지게 난데다 뻐드러지기까지. 원래부터 도톰한 입술이 반항아 같은 앞니를 만나버렸기에 살짝 튀어나왔고 억울하게 입매가 무너지고 말았다. 그래도 엄마가 나를 예쁘다고, 공주 같다고 해 주시는 데다 크면 교정해준다고 하셨으니 개의치 않기로 했다. 2학기가 되어 다시 특기적성 신청서가 나오자, 보란 듯이 발레부를 신청하겠다고 무리들에게 선언했다.

“하지 마. 우리 다 기존반인데 너 혼자 기초반에 있을래? 그리고 슈즈나 발레복 다 사야 해. 그리고 발레선생님이 너 같은 애들 싫어한다구.”

발레용품 사야 하는 걸 바보가 아니고서야 누가 모를까. 우리 집이 그 정도 형편도 안 될 것처럼 내가 만만해 보였던가. 그건 그렇고 발레 선생님이 왜 나를 싫어한다는 거였는지는 모르겠다. 나를 본 적도 없는데 싫고 좋음에 대한 가치판단을 할 수는 없다. 그들 말마따나 예쁜 척을 해서? 어린애가 자세가 좀 구부정한 편이라? 어찌되었든 학교 발레 클래스와 문화센터 클래스 모두 시간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등록은 하지 못했다.

예쁜 발레복을 입고 싶다는 작은 로망은 그렇게 저물었고, 가을 학예회 팸플릿에 뜬 그들의 이름을 바라보며 손가락만 빨았다. 그래도 방과 후 발레 클래스 발표가 어린애들 떼춤 발표 자리인 것은 뻔했으니까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했었다. <호두까기 인형>의 2가지 군무작품 발표에다가 <세상은 열리고>라는 어울리지도 않는 제목을 달아놓고 말도 안 되는 천지창조 스토리를 입힌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다만 <행진곡>의 경쾌한 음악과 <꽃의 왈츠>의 부드러운 선율에 맞춰 춤출 수 없는 것, 그것만이 아쉬울 뿐이었다. 음악도 딱 내 취향이겠다, 꼭두각시보다 잘 표현할 자신이 있는데 녀석들에게 빼앗긴 기분이었다. 그 후로 아무 일 없이 시간이 잘 흘러가다가 겨울방학이 시작되기 전, 이웃집 아이와 또 다른 발레부 아이는 기어이 내 생일에 피날레를 터뜨려 주었다.

“발레 선생님이 우리 왕비라고 했어. 넌 하녀 해.”

다른 아이들처럼 나도 반 아이들을 다 초대하기로 해서 어쩔 수 없이 끼워줬다만, 초대받은 입장에서 참 예의도 없다 싶었다. 놀이터 모래를 한번 걷어차고, 그대로 집에 들어갔다. 그 이후로 그들과 한 반이 된 적도 없으며, 그때 본 발레부 아이들은 끝까지 전공을 하지는 않았다. 이웃집 아이는 또래에 비해 작은 키였고, 다른 발레부 아이들 중에 키가 크고 마른 아이조차 체격조건이 월등히 좋은 편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다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복병이 있었다. 중고등학교 때 무용을 전공하는 아이들은 초등학교 발레부 여자아이들과 수준이 달랐다. 체격조건은 물론이고 어려서부터 여초환경의 단체생활에 잔뼈가 굵어져서인지, 만만해 보이는 아이를 하나 골라 조근조근하게 무시하는 기술 또한 화려했다. 초등학교 때 아이들처럼 대놓고 타박을 주지는 않았지만, 자기네들끼리 몰려다니며 자기들 기준에서 만만한 아이들의 외모에 대해 뒷말을 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 난 조그만 뾰루지 하나조차 심각한 피부질환인 양 부풀려서 속닥거렸다. 그 중에 나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앞에서 직접 한 것이 아니었기에 대거리할 수 있는 명분이 없었다. 무용을 하는 여자아이들이 사람을 나누는 기준은 외모와 만만함 둘 뿐인 것 같았다. 지방에는 무용 전공생들이 더 적고 커뮤니티가 좁아서 그들끼리 똘똘 뭉쳤으며, 인상이 하나같이 온화해 보이지가 않고 어딘가 예민하고 날이 서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리 씨는 달랐다. 내게 처음으로 따스한 목소리를 선사해 준 무용 전공자였다. 제품 리뷰 글과 블로그 안부글에도 배어 있는 나긋나긋한 말투와 어딘가 부드럽고 편해 보이는 인상은 내가 알고 있는 그들과는 달랐다. 그녀의 해사한 미소와 까만 호수를 박아놓은 듯한 눈망울은, 날 집요하게 괴롭혔던 기억에서 꺼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윌리들 사이에서 나를 구하러 온 지젤이다.



*

나리 씨 또한 잠실에 살고 있었다. 무용학원도 내 오피스텔과 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막내이모가 운영하는 곳이라고 했다. 퇴근 시간이 겹치는 날, 나의 애마를 타고 함께 퇴근하고, 출근 시간이 비슷하면 가로수길 단골 카페에서 음료 하나씩을 손에 들고 살롱 오픈 준비를 했다. 우린 고용주와 알바생의 관계를 허물고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마음 맞는 동성친구나 언니동생과 함께 깔깔거리며 다니는, 그런 평범한 일을 30을 딱 채워서야 경험하게 되다니.

“일은 할 만해?”
“네. 전 세상에 재미있는 것은 발레 말고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신세계같아요.”

클래식 예술 전공자들은 다른 곳에 관심을 돌릴 새도 없이 자신의 전공에만 몰두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녀는 자신의 세계를 가득 채운, 화이트 스완처럼 살아야 한다는 암묵적인 규칙을 깨고 일탈을 신나게 즐기는 중이었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속옷 라인은 무엇보다도 웨딩속옷 라인이었다. 레이스 한 올 달려있지 않은 심플한 디자인이지만, ‘웨딩’이라는 말 자체로 설레는 것은 어느 여자나 그럴 것이다. 예비 신부들이 예약 고객으로 온다는 말을 들을 때, 그녀의 눈은 평소보다 더 빛이 났다. 어느 날 맥시브라 웨딩화보를 유심히 보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지젤>에서 윌리 역 할 때 이런 베일 쓰고 하는데……. 모델 표정이 딱 눈 감고 있는 게 많이 닮았네.”

한을 품고 죽은 처녀귀신과, 웨딩드레스를 입을 순간만 기다리는 예비신부의 기막힌 대조라니. 윌리들을 어두운 무덤가가 아닌 밝은 꽃밭에 옮겨놓으면 천국에서 짝을 찾아 행복한 신부처럼 웃을 수 있을까.

“아, 맞다. 언니라고 불러도 돼요?”

망설임 하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기억 속에서 어딘가 예민하고 불편하고 곤두서있어 보이던 무용전공자들에 대한 생각은 갈수록 부드럽게 바뀌었다. 나리 씨는 직접 피팅 하는 업무를 하진 않았지만 살롱을 찾아오는 모든 고객들에게 잘 웃어주었고, 손놀림도 섬세했다. 마네킹에 걸린 먼지 쌓인 속옷을 벗기고 행거에서 새 속옷을 찾아 갈아입혔다. 매일 번거롭다는 핑계로 신상이 나오면 그때서야 한 벌 갈아입혔지만 그녀는 그날의 기분에 따라 색색의 속옷을 걸쳐 주었다. 마네킹 관절을 돌려 포즈를 조금씩 바꿔주었다.

“발레 포즈는 못 잡아주겠네요.”

웃으면서 말하는 그녀의 블라우스 너머로 보정속옷의 레이스가 비칠 듯 말 듯 했다. 발레 할 때는 안에 속옷을 입지 않는다는데, 평소에는 저렇게나 많은 속옷을 식물 속껍질처럼 겹쳐 입는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본사에 메일을 보내야 할 것이 있어서 사무실로 함께 올라갔다. 내가 노트북 자판을 두들기는 동안 그녀는 곁에서 포장하는 일을 맡겼다.

“달달한 커피 좋아해? 마시고 하자.”

얼마 전에 산 캡슐커피 머신에 캐러멜 마키아토 캡슐을 넣었다. 머그잔에 폭신한 거품이 마지막으로 올라앉자 테이블 앞에 가져갔다. 사실 커피를 마시면서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레오타드 안에 속옷을 안 입어? 바스트 포인트가 드러날 텐데.”  
“에이, 다 큰 여자들이 어떻게 그걸 내보이고 다녀요. 안에 조그만 패드가 들어있긴 해요. 그렇게 브래지어가 불필요할 정도로 마른 몸일수록 발레를 하기에 좋은 체격이거든요. 전 그것도 넘쳐서 평소에 스포츠 브래지어에, 일반 브래지어에, 뷔스티에까지…….”

그런 것들을 판매하는 나조차도 셀프 피팅을 할 때 이외에는 일상에서 입어본 적이 없었다. 무용학원 파트 타임 강사의 많지 않은 월급임에도 그녀가 보정속옷을 종류별로 사는 것은 그 이유였다. 지금도 그녀의 얇은 원피스 안에는 버튼이 여러 개 달린 보정속옷과 브래지어들이 자리싸움을 하고 있었다. 실루엣이 조금이나마 정리되긴 했지만, 곡선이 완전히 눌러지지 않아서인지 답답해 보였다. 니퍼, 뷔스티에, 올인원, 거기에 레오타드와 타이즈까지 그녀가 입는 옷들 중에 몸을 조이지 않는 것을 찾기가 더 힘들 것 같았다.

“다른 건 몰라도, 난 타이즈만큼은 안 될 것 같아. 이상하게 불편해서.”
“진짜요? 왜 그렇지?”

타이즈를 습관처럼 신는 나리 씨는 다른 세상 이야기라도 들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마 그녀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여자들이 공감하지 못할 것이다. 6살 때 유치원 학예회 장소가 조그마한 강당에서 문화센터 대극장으로 바뀐 이후부터였던 걸로 기억한다. 5살 때의 나는 춤을 유달리 잘 춰서 학예회의 인기 스타였다지만 큰 무대는 너무도 두려웠다. 불 꺼진 객석에는 관객들의 머리통이 너무나도 많아 부모님을 찾을 수 없었다. 다른 생각을 하다 동작이 어긋났고, 부모님이 실망하시겠다는 생각에 눈물이 터져 나와 울면서 쭉 춤을 췄다. 그때 다리를 감싼 흰 타이즈가 기분 나쁘게 감겨왔던 것이,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타이즈가 싫어졌으니 잘 입고 다니던 치마는 포기해야 했고, 중고등학생때 동복을 입을 때가 가장 문제였다. 교복을 넉넉하게 맞췄음에도 스타킹 때문에 신경 쓰여서 불편했고, 예방책으로 치마 대신 체육복 바지를 입다가 생활태도 벌점만 계속 쌓여갔었다.

“지금이야 이렇게 가터벨트 달린 스타킹 입고 다니지만, 대학생 때는 이것조차 못 사 입었지. 쌀쌀해질 때 치마는 그냥 포기해야 했어.”
“저는……. 스타킹이 제 피부 같아서 아무렇지도 않아요.”

치마가 살짝 올라가며 가터벨트의 끈이 고개를 내밀었다. 맨다리로 치마를 입기 허전한 날씨에, 가터벨트 스타킹은 아주 좋은 아이템이다. 나리 씨 역시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가터벨트 끈을 건드려보았다. 간지럼을 잘 타는 내가 다리를 버둥거리다 테이블 아래 수납공간을 발로 쳤다. 대학 때 마지막으로 합평 받았던 소설이었는데, 가끔 글이 그리워질 때면 꺼내 읽어보곤 했다. 교수님께서 단정한 필체로, 정성껏 달아주신 코멘트를 볼 때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아서 놓고 올 수 없었다. 그런데 나리 씨에게 발견되어 버리다니, 마치 최대 체중에 도달했을 때 찍은 졸업사진을 들킨 기분이었다. 소설 제목과 이름을 가리려는 내 손보다 나리 씨의 눈이 더 빨랐다.

“이것도 학교 다닐 때 쓴 거죠? 한번 보고싶네요."
“에이, 이건 진짜 안돼. 깔끔쟁이가 보기엔 좀 그럴 거야. 내가 살롱만 관리할 줄 알지, 정리정돈 진짜 못 하는 성격이거든. 그게 글에서도 드러나더라구.”
“괜찮아요. 왜 꼭 단정하고 반듯해야만 하죠?”
“발레로 비유하자면, 백조도 흑조도 아닌 이상한 생물체라서…….”

단정한 화이트 스완. 문예창작학과에서, 정확히 말하면 순수문단에서 원하는 글도 딱 그랬다. 단정한 발레리나 같은 글. 수업시간이나 창작 스터디에 가면 교수님들이나 선배들은 좀 더 참신하고 특별한 생각을 하라고, 상투적이지 않은 이야기를 끌어내라고 하셨다. 발레가 관절을 자유자재로 꺾고 일상에서 쓰는 근육과 다른 근육을 쓰듯 문학을 하는 사람들도 그래야만 했다. 발레리나가 포인트 슈즈를 딛고 발끝으로 서듯 우리는 펜 끝에 모든 걸 세워야만 했다. 그 속에서 균형 잡힌 아름다움을 찾는 것. 그것이 춤과 문학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이었다.

첫 교수님께서 좋게 봐주셨던 에로틱한 작풍을 계속 가지고 습작을 했다. 누군가 내 글에 이름을 불러주었기 때문에 그대로 꽃이 되어버려 싹을 틔우기 전으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뭐든지 섹시한 것은 쉽게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마련이다. 잘못 쓴다면 단순히 야하기만 한 소설이 되어 버릴 수도 있었겠지만 그나마 필력이 받쳐주어서 읽을 만하다는 사람도 있었다. 단지 아쉬운 것은 글 속에 내 주관적인 이야기나 나만의 냄새가 너무 강렬해서 독자가 집중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정리정돈을 못 하는 성격도 한 몫을 했다. 어떤 교수님의 조언대로 글을 쓸 때 나를 드러내지 않도록 해 봤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흑조가 얌전히 아다지오를 추며 사람들을 속이고 자신까지 속이며 백조인 척을 해봤자 검은 의상과 크고 강렬한 동작 때문에 결국 흑조라는 것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차라리 흑조였으면 낫겠지 싶다.

내가 대학생 때 쓰던 글을 발레로 비유해보자면, 겉은 백조 속은 촉새라고 할 수 있겠다. 내 소설 속 문장은 작고 동그란 두상에 긴 목과 팔다리를 가졌다. 꼬리 빗으로 꼼꼼히 가르마를 타서 돌돌 말아 올린 머리에 반짝이는 티아라를 쓰고, 허리선을 드러내주는 상의 아래에 수직으로 펼쳐지는 클래식 튜튜를 하늘거리며 무대 정중앙으로 나간다. 우아하게 첫 포즈를 잡으며 심사위원과 관객들의 기대를 공연장 천장까지 끌어올린다. 사람들은 당연히 청순가련한 지젤이나 잠에서 깨어난 오로라 공주를 춤출 것이라고 생각하겠지.

헌데 날 지켜보는 사람들의 기대가 박살나는 것은 한순간이다. 발레리나가 개다리 춤이나 강남스타일 춤, 아니면 <무한도전>에서나 볼 법한 저질댄스를 추면서 조신치 못하게 다리를 쫙쫙 벌려대는 것은 상상만 해도 최악이다. 관객들의 벌어진 입에서 탄식이 쏟아져 나오는데도 무시하고, 한술 더 떠서 누난 강남스타일! 앗싸라비야 깐따삐야! 닭다리 잡고 삐약삐약! 육성으로 악을 쓴다면? 비싼 돈을 들여 맞춘 의상과 분장은 금세 무용지물이 되어 버리고 긴 팔다리마저 사치스러워 보일 것이다. 그 와중에도 야무지게 포인을 한 발 모양새는 더 우습다. 차라리 꼬마 발레리나의 짧은 팔다리와 작은 몸통이라면 귀여워 보이기라도 할 텐데, 주니어를 뗀 발레 전공생이 긴 팔다리를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모습은 행사장 바람풍선인형의 공허한 몸짓보다도 못하다. 저딴 게 발레라고? 조명이 꺼진 객석에서도 관객들의 구겨진 표정이 보이고, 앞자리에선 안무 선생님이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린다. 왜 빼어난 신체조건을 낭비 하냐며. 하다못해 점수를 깎아버리면 그만인 심사위원들조차 내심 아쉬워하는 눈치다.

나리 씨는 발레 할 때 어땠어?”
“모르겠어요. 저도 춤출 때는 분명히 행복했는데, 행복을 완전히 제 것으로 누릴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이거 때문에. 중학교 때부터 이렇게 컸거든요.”

발등만 솟아올랐으면 발레리나에게 있어선 더 없이 행운이겠지만 가슴이 솟아오른다는 것은 시한폭탄을 쌍쌍이 지닌 것과도 같다. 가슴이 어디까지 커질지는 아무도 가늠할 수 없다. 살롱을 찾는 다른 고객들만 해도 어릴 때 가슴 크기가 그대로였던 사람들도 있지만 사춘기 후반 무렵에 커지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무용이나 체육 전공자들은 2차 성징을 반기지 않는다. 체형이 변해버리는 것 자체가 복병이기 때문이다 나리 씨의 시한폭탄은 기어이 터져버렸고, 그녀의 발레 인생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나리 씨도 팔을 들었다 내리는 동작 하나하나까지 의미 없는 움직임이 아니었을 텐데 관객들의 관심은 그녀의 가슴에만 쏠리게 되었다. 몽우리가 솟아올랐을 때의 설렘이 가시기도 전에, 짐짝으로 전락해버린 가슴은 아무리 탱탱하고 예쁜 모양이어도 행복할 수 없다.

“외국에야 뭐, 미국 쪽에는 가슴 큰 발레리나도 없지는 않은데 여긴 한국이고, 전 발레리나란 이름조차 민망한 일개 전공생이었으니까요.”

나리 씨가 발레전공자이지만 발레리나라는 이름이 100프로 어울리지 않듯, 나도 글을 썼지만 등단을 하지 않았으니 작가란 이름이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다. 그 분야에서 입지를 다진 상태가 아니라면, 그곳의 암묵적인 규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내 주변에 글을 쓰는 사람들은 내 글을 보며 말했다. 등단하기 전까진 그래도 지킬 건 지키라고. 일단 백조의 자태부터 갖추고 흑조를 끌어내도 늦지 않다고. 합평지에 빨간 줄이 그어지고 수업 시간에 기습적으로 심한 말을 들어도, 글이라는 내 무대를 떠날 수 없었다. 그 무대 위에서만큼은 내가 블랙 스완이 될 수 있었으니까. 남들이 뭐라고 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그래도 재능이 보인다는 말은 너무도 달콤한 사탕 같아 포기할 수 없었다.

“학원 선생님은 저에게 한국무용도 권하셨어요. 전과하는 것이야 말이 쉽지, 완전히 반대의 춤을 춰야 하는 것인데……. 발 디딤새부터가 달라요. 발레는 발끝으로, 한국무용은 뒤꿈치로. 무엇보다도 긴 치마로 제 발등까지 감춰버려야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나리 씨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다리를 쭉 펴자 하이힐 밖으로 솟아오른 발등이 보였다. 포인트 슈즈를 신었을 때 라인이 예쁘기 위해선 저 ‘고’가 반드시 필요하다. 분홍신을 신은 소녀처럼 상처받으면서도 계속 춤을 출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그녀의 발등에 있었다.

“언니도 발레 조금이라도 배워보실래요?”
“아, 아니……이 나이에 무슨.”

말은 그렇게 했지만 좋았다. 나에게 발레를 배워보라고 권유한 것 또한 그녀가 처음이었다. 수능이 끝나고 몸매 관리 차원에서 취미 발레를 배울까 했지만, 엄마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도 회의적인 의견이었다. 어렸을 때 조금이라도 배운 사람 아니면 불가능할거라고. 내가 오랫동안 실패한 첫사랑마냥 가슴 속에 꽁꽁 묶어둔 로망을 그녀가 깨우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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