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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고민 | 공대생도 글을 쓸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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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쏘나기 작성일17-10-29 20:06 조회128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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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제목처럼 전 23살 공대생이에요. 어찌 말을 시작해야 좋을 지 모르겠네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글을 읽어줄지도 모르겠고요. 어쩌면 시험기간이라 마음이 불안해서 일단 저지르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익명의 힘을 빌어 용기내어 말해봅니다. 그저 잠시 들어주었으면 싶네요.

전 본래가 적성이 이공계 쪽인 줄로만 알았어요. 시골에서 커서 사교육 한 번 받지 않고 자라왔던 제가, 영재스쿨이니 각종 올림피아드, 과학전시회, 실험대회 등 나가며 큰 상은 아니지만 조금씩 입상은 하며 칭찬을 먹고 자라왔으니까요. 실제로 아주 흥미가 없던 것도 아니었어요. 고등학교는 당연하게 이과로 진학했고 학교도 지방국립대의 공대로 왔습니다. 여전히 무난한 성적에 무난한 흥미였어요.

그러다가 군대를 가게 됐습니다. 진심으로 느낀 건데, 군대는 제 인생의 꼭지점 같더군요. 설악산 근처의 강원도 고성 근방에서 지뢰병으로 근무했습니다. 산의 기운이라도 받은 걸까요. 매일 밤 개가 짖는 소리를 들으며 거센 바람을 버티고 서 있으면 참 잡다한 생각이 많이 들어요. 2년 가까운 시간을 생각했어요. 그리고 처음으로 제 인생을 부정했어요. 나 원래 다른 걸 좋아하지 않았나 하고요.
언젠가 휴가를 나가서 어머니와 술을 마시며 대화를 했어요. 그리고 결국 저질렀죠. 난생 처음으로 입 밖으로 뱉어본 말이에요. 나 사실 글을 좋아한다고. 사실 이 때 어머니가 당황해하실 줄 알았어요. 아니면 화내시거나. 근데 전혀 예상 밖의 대답이 돌아오더라구요. 살짝 고개를 숙이고 미소를 지으시며 하시는 말씀이 "ㅇㅇ아, 너 기억나니? 너 어렸을 때, 눈 나빠진다고 밤에 책 읽지 말라고 해도 끝까지 잡고 읽던거?"
정말 주마등처럼 스쳐가더라고요. 내 어렸을 때 기억들이. 진로에 대해서 전혀 생각도 안 해봤을 때 했던 제 행동들이. 조금은 후회도 했어요. 고등학교 때 왜 아무 생각도 안 해보고 이과로 진학했나. 왜 스펙이랍시고 좋아하지도 않는 비문학계열 책을 굳이 골라잡았었나. 뭐 그런 것들이요.

그리고 군대에서 처음으로 글을 써봤네요. 군대에도 병영문학상이란 게 있어요. 초기에는 그 규모가 좀 작았던 것 같아서 가볍게 시작했는데 막상 잡고보니 꽤 커졌단 걸 깨달았네요. 지원자 수도, 그 수준도. 당연히 탈락했죠. 첫 작품인걸요. 재능 같은 게 있을 거란 막연한 희망을 가진 것도 아니었고요.
근데, 정말 재밌었어요. 정말, 정말로. 제가 저 때 한달만에 a4 20장 분량을 썼거든요. 군대 다녀오신 분들은 아실거에요. 그러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매 일과가 끝나면 바로 도서관에 달려가서 글을 썼어요. 한달 밖에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하루에 한 장씩 쓴다고 마음 먹고 저녁에 두시간 글쓰고, 밤에 원격강좌 신청해서 한 시간씩 한글에 옮겨담고 조금씩 퇴고도 하고 했죠. 실제론 훈련도 껴있고 하니 하루에 2장 정도 썼다고 보면 돼요. 당직사관에 따라 원격강좌도 매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요. 그래도 해보니 시간은 딱 맞아서 퇴고도 한 일주일 정도 할 수 있었어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도 몰랐기 때문에 그냥 막 근본없이 했어요. 기본적으로 제가 필사로 먼저 작성해서, 그거 보며 고치기도 하고 밤에 컴퓨터로 만질 때 또 고치고, 다시 프린트해서 또 들고다니며 고치고 했네요. 봐도봐도 고칠 것 투성이었지만 토 나올 것 같아서 마감 이틀 전에 냈어요. 글 쓸 때도, 아 장면묘사를 어떻게 해야지, 문단을 어떻게 나누지, 시제는 어떻게하지 등 뭐 모르는 건 굉장히 많았죠. 저는 딱 김애란 작가님의 비행운 한 권 붙잡고 썼어요. 이 한 달동안 비행운만 10번은 읽었던 것 같네요.
그냥 한 줄 평이 필요했어요. 상금도 상금이지만 입상을 하면 평을 조금이라도 해주니까, 그게 너무 간절했어요. 미래가 기대된다 라든가 배우면 더 재밌는 글이 나올 것 같다든가.. 그 한 줄 평만 들으면 당장 다 때려치우고 자퇴하고 한예종 문창과 입시준비했을 거에요. 어찌됐든 탈락하고 그런 일은 없었네요.

그리고 무난히 전역해서 공대에 다시 복학했어요. 그럼에도 못 참고 문학동아리에 들어가서 조금씩은 쓰고 있어요. 군대 때에 비해서 시간은 많지만 심적으로 더 여유가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당장 쥐고 있는 것이 있으니.
그게 문제에요. 당장 쥐고 있는 걸 못 놓아서. 이제 슬슬 취업 생각을 할 때가 됐고 그 때마다 듣는 초봉얘기에 스스로 감탄해서 이 공부를 무턱대고 포기하기가 어려워요. 하지만 글도 놓기 싫어요. 배우고 싶어요. 불행히도 지방에는 문예 비스무리한 학원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그저 방학이 되면 수원에 올라가서 공사일 하면서 학원도 등록해서 좀 배워야겠다 하는 생각이에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다시 군대 때 쓴 글을 보게 됐어요. 토 할 것만 같았고 또, 자괴감이 컸던 글이어서 한 일년을 쳐다도 안보고 살았는데 다행히 글이 들어있던 메일까지 지우진 않았네요. 그 땐 스스로 너무 못 쓴 것 같아서 공모 낼 때도 회의하면서 내긴 했는데 지금 보니 잘 쓰긴 한 것 같네요. 동아리원에게도 보여주니 정말 잘 봤다고. 자기는 그거 보자마자 바로 끝까지 다 봤다고, 꼭 영화 한 편 보는 것 같았다고. 하.. 정말 미칠 것 같네요. 정말 다시 한 번 더 해보고 싶어서요.

저도 저를 잘 모르겠어요. 글 쓰는 게 정말 재밌어요. 남들이 읽고 좋은 평이든 나쁜 평이든 해주면 훻씬 재밌고요. 근데 공대생홯을 유지하며 계속 쓸 수 있을까요? 공대생이 글 쓰고 공모에 입상해서 한 줄 평을 받을 수 있을까요? 공대생홯을 접고 지금이라도 문창과 입시를 준비하는 게 나을까요? 이제 곧 24이고 새로 입학하면 25일텐데 그래도 괜찮을까요? 아아.. 저도 모르겠네요. 자꾸만 스스로와 타협하려는 제 자신이 싫고요.

지금은 그저 김애란 작가와 김경욱 작가 한강 작가를 좋아하는 한 공대생입니다. 문학동아리를 하고 있고요. 적성검사를 해보면 예술계열로 나오네요. 하지만 공대 성적도 나쁘지 않은 그런 학생입니다.

댓글목록

키팅님의 댓글

키팅 작성일

소나기 님의 진솔한 이야기 잘 보았습니다.
진로에 대한 고민이시네요.
군대를 마치고 대학에 복학한 그 쯤의 시기에는 가장 큰 고민이 장담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걱정일 것 입니다. 더군다나 소나기 님 처럼 다양한 분야에 재능과 호기심이 많은 분에게는 더더욱 갈등이 심할 것 같습니다.

진로의 선택이 쉽지 않은 문제이지요. 함부로 결정할 수도 없습니다. 현실을 무시할 수도 없어요. 자신과 타협하려는 것이 싫다고 하셨지요? 아닙니다. 그게 맞는 거예요. 자신의 인생을 쉽게 생각하지 않으려는 나름의 노력이니까요. 지금까지 걸어서 종착점이 보이는 길을 버리고 막막한 길을 새로 출발하려는 결정이 어디 쉽겠습니까? 물론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고 그런 일을 업으로 삼고 살면 좋겠지요. 하지만 그러기에는 문학계의 현실이 그리 녹녹치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남자 분이라면 더욱 그 길이 험난하고요.

부족하고 자격도 없는 사람이지만 개인적인 조언을 드리자면 직설적으로 말해서 타협을 하세요. "현재의 공학계통의 진로냐, 좋아하는 문학계통의 진로냐"를 가지고 이분법적으로 결정하려고 하지 마시고 지금 공부하고 있는 공학을 열심히 하면서 취미로 문학 활동도 꾸준히 하세요. 꼭 하나를 포기할 필요는 없잖아요. 물론 선택과 집중을 통해 더 진지하고 전문적인 소양을 배우고 싶어한다는 것도 알아요. 두 군데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자니 둘 다 어정쩡할 것 같고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하는 마음에 답답함도 느끼겠지요. 하지만 이 정도는 감당하시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렇게 꾸준히 문학 활동을 이어가다 보면 분명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새로운 길이 열릴 거예요. 새로운 길을 가려거든 그렇게 가세요. 지금의 길을 거슬러 가려하지 말고요. 대신 문학활동을 지금처럼 하시고 공모전이나 대회 준비도 꾸준히 하세요. 그렇게 스스로를 검증하고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 가며 성과를 이루다 보면 분명 기회가 저절로 찾아 올 겁니다. 아직은 시간도 많고 기회도 많으니 당장 결정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조급함은 버리시고. 부담없이 즐겨 보세요. 진짜 하고 싶은 일이라면 이렇게 해서라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일부 유명한 작가들을 제외하고는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문학 이외의 생업 없이는 생활하기가 어렵습니다. 문학 만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생활의 무게 때문에 문학을 접는 경우가 많아요. 본업을 가진 문학인들이 오히려 부담없이 즐기며 문학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점 참고 하세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이야기가 있으면 좋겠는데 두서없이 이야기가 길어졌네요. 제 의견은 그냥 참고만 하시고요. 아무튼 가끔 이 곳에서도 이렇게 이야기 나누며 소나기 님의 작품도 배독할 그 날을 기대하겠습니다.

쏘나기님의 댓글

쏘나기 댓글의 댓글 작성일

감사합니다. 키팅님 말씀을 듣고 심적으로 많이 안정되네요. 사실 이게 답이라는 걸 저 스스로도 알고 있었을텐데 어쩌면 확신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틀리지 않았다는 것의 확신이요.

사실 요 몇 일간 어떤 문학기자님의 메일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김애란 작가님과 연락하고 싶은 마음에 실례란 걸 알지만서도 연락처를 물어봤거든요. 다행히도 오늘 작가님의 메일주소를 받았네요.

참 하고싶은 말이 많았는데, 많은 조언과 도움을 얻고 싶었는데 우선 잠깐 생각을 해보려고요. 오늘 키팅님 말씀을 듣지 않았다면 또 다시 두서없는 글로 작가님을 곤란하게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사실 이후라고 달라질 것도 없지만요. 그저 조금 생각을 해보고, 조급한 마음에 실수하지 않고 올바른 답을 얻어가기를 바라고 있어요.

현실적인 답변 정말 감사드려요.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허깅유님의 댓글

허깅유 작성일

현실적인 대답을 하겠습니다. 연예인,작가, 운동선수 모두 성공률이 매우 매우 매우 낮습니다. 그러므로 공대 졸업하시고 직업을 가지시고, 가정을 이루면서 문학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일평생 이루시면 됩니다. 요즘은 카카카오스토리를 이용해서 익명의 사람들과 카친을 맺고 자신의 시나 수필 혹은 생활문을 공개하며 다수의 팬들과 소통하는 아마추어 작가들도 많이 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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