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들과의 대화

'감성'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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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윤복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7-03-29 12:07 조회3,621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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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부터 저는 감성을 없애버리는 노력을 해왔습니다.

주로 무슨 일이든 그냥 보잘것 없다고 생각해버리는 것,

남들의 감성에 무신경한 태도로 일관하는 것,

감성적인 것들에 한 발자국 떨어져 창피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등

저는 점점 황폐해져가는 마음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것조차 편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성적인 것들에 동경을 느끼고 결국 그대로 이과생이 되었고 대학도 자연대를 가서

지금은 이과 끝판왕의 직업을 향해 걸어가고있어요. (ㅋㅋ..)

 

 

이렇듯 제가 지금까지 생각해온 감성에대한 생각들 중 대부분은 부정적인 생각이 강했어요.

감성은 늘 저를 침식시켜버려서 해야할 일도 잘 하지 못하게 만들었거든요.

사실 감성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제어할 힘이 부족했다는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지만요..

 

 

작년에는 사랑의 바람에 휩쓸려 잠시 잃어버렸던 진정한 저를 되찾고

세상의 무수한 이야기들을 느꼈어요.

지나는 풀꽃들조차 말을 건네고 지나치는 돌도, 나무도, 구름도, 하늘도, 세상도

모두 기쁨의 빛을 뿜기 시작하는데 정말로 눈이부셨답니다.

처음으로 감성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됐었어요.

남들보다 조금 더 짙은 감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같은 것을 바라봐도 남들보다 조금 더 깊이, 풍부하게 느낄 줄 안다는 것.

지금 이 순간을, 이 느낌을 조금 더 자세히 음미할 수 있다는 것.

시간을 조금 더 더디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저는 감성을 잘 어르고 달랜다면 삶이란 나무에 좋은 거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저에게 남은 이 감성이 너무도 힘이 들어요.

사랑에 실패하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는 감성을 잡기위해

친구들도 거의 하루에 한번씩 만나 깊은 생각을 안하려고 노력했다가

그러고 집에 오면 더 큰 회의감이 드는 것을 느끼고 차라리 시집을 읽어보기도 하고,

도서관에서 하루종일 앉아 책을 읽으며 삶에대한 고찰을 하고,

수필을 써보기도 하고, 내 마음이 지금 어떤지, 하고싶은 말이 무엇인지

일기를 써보기도 하고. 

감성을 그냥 와락 끌어안고 끝이 보일 때까지 잘 어르고 달래보려 했는데...

여전히 감성은 저를 휘감아 온통 흔들어놓네요.

수험생이라 공부도 제대로 못해버리고...

나름 성인이 됐다고 생각했는데 제어를 못하는 것은

10년 전 사춘기 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 같아서 너무 속상해요.

감성은 독이되어 몸과 마음을 망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차라리 이성을 더 많이 가진 사람이 부러워요.

한 때는 그들의 인생에 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느 것도 틀린 것도 아닌 다른 것임을 깨닫고

그들은 그들만의 인생이 있다는 것을,

감성이 조금 부족해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 ...그저 부러워지더군요.

 

 

단지 사랑의 실패에 관한 감정만이 아닌 저의 감성에대한 근본적인 고찰을 많이 하게 됩니다.

사랑을 몰랐을 시절에도 감성은 늘 저를 잠식시켰거든요.

 

여러분들은 대부분 저보다 훨씬 더 짙은 감성을 지니고 계시겠지요. 그래서 정말 궁금합니다. 저만 이렇게 감성에 휘둘리는건지... 어떻게 제어를 하시는지.

 

 

 

댓글목록

키팅님의 댓글

키팅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신윤복 님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감성이 자신을 방해하는 요소라고 생각해서 늘 감성을 억제하고 대신에 이성의 요소들을 확대시키고 강화시키며 지내 오셨던 거네요. 그런 삶의 방식을 택하신 것도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누구나 가치관이나 삶의 태도를 어떻게 결정하고 형성할지는 다 제각각이겠지요. 확실한 것은 자신이 겪으며 살아온 환경과 경험들이 토대가 되어 자연스럽게 결정되고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 일 테고요. 그래서 어떻게 결정하는 게 정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조언을 해 주기도 어렵긴 합니다. 제각기 다른 경험과 생각 속에서 그렇게 자신의 성격과 삶의 스타일이 고착화되겠지요.

단지 제가 이야기해 드리고 싶은 부분은 트라우마처럼 여겨지는 감성에 대한 인식이 자신에게 왜 생겼을까? 하는 물음에 답을 찾으셨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감성은 언제나 날 방해만 하니 억눌러야지, 지금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인 데 시시콜콜한 감정에 빠져 허우적 될 시간이 없어."라고 생각하는 것에는 감성이 문제가 아니라 그 감성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물론 이런 사실도 신윤복 님은 알고 계시겠지요. 그래서 제어할 힘이 부족하다고 하시는 것이고요. 그게 자신 없으니 자꾸만 감성을 억누르는 방법을 선택하셨던 거고 그렇게 지내면서 어딘가 모르게 돌아서면 또 공허함과 회의감으로 힘들어 하신 거겠지요?

감성을 제어할 수 없는 이유는 아마도 한 가지 감정에만 몰입하기 때문 일 겁니다. 특히나 그 감정의 방향은 대개 부정적인 성격이 강할 것이고요. 그리고 감정을 조절하는 데에 있어서 너무 이성적인 접근을 하는 것도 의미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느껴지는 대로 느끼고 표현하되 너무 한 감정에만 몰입하지 말고 될 수 있는 대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감정을 이끄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지요. 그렇다고 삶을 너무 이성적인 기준으로만 살면 결과에만 집착하는 무미건조하고 재미없는 삶이 되기 쉬우니 이성과 감성을 고르게 삶에 녹이셔서 지내셨으면 좋겠어요.

신윤복 님뿐만 아니라 대부분에 사람들이 그렇게 감성에 휘둘리며 해결되지 않는 고민들로 힘들어하며 살아가고 있으니 너무 외로워하지는 마세요. 고민이 문제가 아니라 그 고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할지가 중요한 것이니 고민 자체에 너무 몰입하지 마시고 여유를 가지시고 극복해 보셨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류시화 시인의 시 한 편 선물해 드리고 이만 줄입니다.

안개 속에 숨다

                                                    류시화 시인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인기척과 함께 곧 들키고 말지만
안개 속에서는
가까이 있으나 그 가까움은 안개에 가려지고
멀리 있어도 그 거리는 안개에 채워진다

산다는 것은 그러한 것
때로 우리는 서로 가까이 있음을 견디지 못하고
때로는 멀어져감을 두려워 한다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누구나 고독하고,
그 고독을 들킬까 굳이 염려하지만
안개 속에서는
삶에서 혼자인 것도 여럿인 것도 없다
그러나 안개는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머무를 수 없는 것
시간이 가면
안개는 걷히고 우리는 나무들처럼
적당한 간격으로 서서
서로를 바라본다

산다는 것은 결국 그러한 것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시작도 끝도 알지 못하면서
안개 뒤에 나타났다가 다시 안개 속에 숨는 것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신윤복님의 댓글

신윤복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의 댓글 작성일

시인님 말씀 들어보니까, 왜 그런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아무래도 어린시절 감성을 없애려는 노력을 했던 계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린시절 저는 생각이 너무 많아서 꾸중을 들은 적이 있어요.
친구들하고는 그런 대화가 잘 안됐던 것 같고 가족들에게 가끔씩 말을 하면 돌아오는 것은 꾸중이었어요. 조그만한 애가 왜 그렇게 생각이 많느냐, 생각 말고 공부를 하거라, 그럴때면 생각이 많은 것이 무조건 잘못인줄 알아서 그렇게 대화를 시도 했었던 제가 부끄러워졌었답니다. 사춘기 때 그런 시도를 여러번 했다가 번번히 실패를 했고 그 뒤로 아직까지도 그런 대화를 잘 하지 않게 됐어요. 아무래도 지금도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할때 부끄러워지고 자고 일어나면 왜 그런말을 했을까 공허해지는 것도 그 탓인 것 같아요.
그때 당시 그런 생각들을 조금 더 개방적이고 긍정적으로 대하는 법을 배웠었다면 이런 저에 대해 괴리감을 느끼지 않았을 것 같아요.
지금부터라도 배워가야겠어요. 시인님 말씀대로 저의 감성은 주로 같은 곳을 향해있어서 아직까지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런 감성들을 한 곳에만 집중시키지 말고 더 넓게, 긍정적인 생각들로 변화시켜야 겠어요. 그것이 근본적인 해답인 것 같네요.
류시화 시인님의 '안개 속에 숨다'라는 시 추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개 속에서 살아가며 수용적인 자세로 그러나 한 발자국 떨어져서. 제 감성 뿐만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도 나무 뒤가 아닌 안개 속에서 마주하는 법을 배워가겠습니다.

아무한테도 물어볼 수 없는 내용이었는데, 이렇게 해결에 가까운 방도까지 제시해 주시니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보다 성숙한 젊은이로 성장하겠습니다!
얼굴 책 이라고 하셔서 한참 생각하다가(ㅎㅎㅎ) 기억해 주셔서 감사해요~!

화연님의 댓글

화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감성이란 확실히 이성의 대척점에 있다고 해도 그리 잘못된 건 아닙니다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누구나 감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일뿐, 감성이 과연 이성의 대척점일까. 이성이란 분명 '이치'에 의한 품성을 의미하는 것 같고 감성이란 '감각'에 의한 품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몸으로 생각하는 것......그것이 정반대가 아니고 사실은 사람의 몸에 전부 존재해서 공생하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봅니다. 사람이 무슨 일을 할때, 감성을 무시하고 이성만을 중시해서 생각해야만 해.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이성과 감성의 어느정도의 통제는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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