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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 고정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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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키팅 작성일16-11-01 10:53 조회784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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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다가 불현듯 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 "그런 네가 그리우면 울기도 하는 사람", 그래서 향기와 온기로 가득한 사람. 지금도 그대들의 "이름을 호명하는 밤"은 계속되고, "너에게로 가까이 가기 위하여 빗장 밖으로 사다리를 내린" 날들의 연속인데 그러나 너는 "이내 바람으로 흩어지고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고정희 시인

길을 가다가 불현듯
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목을 길게 뽑고 두 눈을 깊게 뜨고
저 가슴 밑바닥에 고여 있는 저음으로 첼로를 켜며
비장한 밤의 첼로를 켜며
두 팔 가득 넘치는 외로움 너머로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너를 향한 그리움이 불이 되는 날
나는 다시 바람으로 떠올라
그 불 다 사그러질 때까지

어두운 들과 산굽이 떠돌며
스스로 잠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떠오르는 법을 익혔다

네가 태양으로 떠오르는 아침이면
나는 원목으로 언덕 위에 쓰러져
따스한 햇빛을 덮고 누웠고
달력 속에서 뚝, 뚝,
꽃잎 떨어지는 날이면
바람은 너의 숨결을 몰고와
측백의 어린 가지를 키웠다

그만큼 어디선가 희망이 자라오르고
무심히 저무는 시간 속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호명하는 밤,
나는 너에게 가까이 가기 위하여
빗장 밖으로 사다리를 내렸다
수없는 나날이 셔터 속으로 사라졌다


내가 꿈의 현상소에 당도했을 때
오~ 그러나 너는
그 어느 곳에서도 부재중이었다

달빛 아래서나 가로수 밑에서
불쑥불쑥 다가왔다가
이내 바람으로 흩어지는 너,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고정희 시인 소개

 

1948년 해남군 삼산면에서 태어난 고정희 시인은 1975년『현대시학』에 「연가」, 「부활 그 이후」 등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고 타계하는 해인 1991년까지 모두 열 권의 시집을 발표한 시인이다. 1980년대 대표적 여성운동가이자 시인이며 우리나라 여성주의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실락원 기행','초혼제','지리산의 봄' 등 시집을 통해 우리나라 여성주의 문학의 새로운 경향을 이끌었으며, 여성신문 초대 편집주간과 또하나의 문화 동인 활동 등을 통해 1980년대 이후 폭발적으로 나타난 페미니즘 운동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1991년 6월 9일 지리산 등반도중 피아골의 급류에 휩싸여 43살의 짧은 생애를 마감하였다.


고정희 시인의 대표작으로는 ‘상한 영혼을 위하여’와 ‘우리동네 구자명씨’등이 있고 유고 시집으로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1992)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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