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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풀밭은 사라지고 핏물만이 고여(채식주의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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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러블리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12-16 16:06 조회2,7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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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영혜 부

과거에 월남전 참전용사였으며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만 하며 살아왔다. 보수적인 가장의 전형적인 모습을 한 인물. 어린 시절 영혜를 문 개를 잡아다 비인간적으로 도축한 뒤 딸에게 먹이고, 이는 훗날 영혜가 육식에 트라우마를 갖게 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집들이 때 육식을 계속 거부하는 영혜에게 억지로 탕수육을 먹이려 하고 딸을 자살기도하게 만든다. 영혜의 남편처럼 가부장적인 남성의 표상이며, 강한 적대자로 작용한다.

 

(6)영혜 모

한국의 전형적인 어머니상. 남편의 기에 눌리고 가정을 돌보느라 정작 자식들의 마음까진 품어 줄 여유가 없이 살아왔다. 어머니 역시 육식을 거부하는 영혜를 이해하지 못한다. 자살기도 후 입원한 딸에게 몸보신을 해준다는 이유를 대며, 흑염소 액을 일반 한약이라고 속이면서까지 먹이려는 모습을 보인다. 작게나마 영혜의 적대자 역할을 한다.

 

    

 

3. 계속되는 피의 악몽

소설의 모든 것은 영혜의 에서 시작된다. <채식주의자>에서 남편 외에 영혜 시점의 서술이 꿈에 대한 이야기로 나타난다. 이탤릭체로 처리되어 2인칭 서술로 표현되는데, 남편의 이야기가 끝나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영혜가 혼자 독백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잔인한 꿈에 대한 세세하고도 감각적인 묘사가 현실감을 더한다. 소설에서 꿈에 대해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다. 만약 영혜가 채식을 하게 된 것이 단순히 꿈 때문이라고만 표현했더라면 소설의 개연성이 떨어질 수 있다. 현실적이지 않은 이야기를 다룰 때는 2배로 치밀한 구성을 해야 되는데, 작가는 꿈에 대해 트라우마라는 개연성을 부여하여 치밀한 구성을 하였다.

주이란의 단편소설 <>도 비슷한 구조이다. 여주인공은 자신의 체격을 키우기 위해 육식을 탐닉하고 세 치 혀로 사람들에게 사기를 치며, 어린 남자아이에게 그릇된 성적 취향을 갖고 있다. ‘포식자의 삶을 누군가를 먹어야만 살 수 있는 삶에 회의감을 느끼고, 죽은 고기를 발라 먹는 것을 그만두고 시골에서 농사짓고 풀을 뜯으며 살고 싶다고 말한다. 자신의 행동을 참회하는 의미로 모든 악의 근원인 를 잘라 프라이팬에 구워버린다. <>의 주인공과 달리 자기주장이 약했던 영혜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혀를 자르는 극단적인 행위는 할 수 없다. 그저 남편과 주변 사람들의 폭력적인 모습에 반발하며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말만 할 뿐이다.

영혜의 첫 꿈은 피가 고인 웅덩이가 나오는 꿈이다. 숲을 거닐다가 우연히 어떤 헛간에 들어간 영혜는 벽에 걸린 고깃덩어리를 본다. 평소에도 즐겨 먹던 고기이지만 마르지도 않은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흰 옷이 온통 피에 젖는다. 황급히 고기창고를 빠져나갔지만, 바닥에 고인 피가 웅덩이처럼 고이고, 포식자처럼 고기를 먹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꿈은 무의식이 표출된 것이며, 그녀가 육식에 대해 트라우마가 내재되어 왔음을 암시한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남편의 표현에 따르면 영혜는 평소에 식성이 좋은 사람이었다. ‘불판에 있는 고기를 익숙한 솜씨로 듬직하게뒤집는데다, 삼겹살 튀김이나 육전 등 고기 요리도 잘 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꿈을 한번 꾸었다고 해서 고기를 끊은 것일까? 그 이유에는 남편도 포함되어 있었다. 전날 아침, 남편은 출근이 늦었다며 계속 아내를 재촉했다. 늦었으면 간단하게 먹어도 될 법도 한데 굳이 영혜가 얼어붙은 고기를 썰게 시킨다. 영혜는 손을 다치지만 남편은 불고기에서 칼 조각이 나오자 영혜를 더 나무란다. 독백 부분에서 침착해졌다라고 한 것은 남편의 이기심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환멸을 느끼게 된 것을 말한다.

아무리 육식이 지탄받는 것 같아 보여도, 사회는 육식 중심으로 돌아간다. 회식 때 즐겨 찾는 메뉴는 삼겹살구이 아니면 생선회이다. 영혜 또한 사회생활을 해야 하므로 고기를 먹었어야 했고, 가정에서도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을 할 때는 아무리 내가 싫고, 부당해 보여도 일단 규칙을 따라야 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기 마련이다. 남편의 회사 간부들과 참여한 부부모임에서도 그녀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으며 소외되는데, 실제로도 비건 채식주의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남편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을 말로 설득해봤자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니 대화 자체를 차단해버린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의견을, “저는 고기를 먹지 않아요자들은 회식이나 모임 등에서 불편함을 많이 겪는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혜가 채식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큰 모험이다. 쉽지 않을 것을 예상했음에도 암묵적인 규칙을 깨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좋게 보지 않는다. 소설에서 영혜가 남편과 대화하는 장면은 전혀 나오지 않한 마디로만 말한다.

고기는 폭력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일본 일러스트레이터 우에다 후우코는 어린 시절 학교폭력과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는데, 자신의 경험을 상징화시켜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림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는 뿔 달린 동물과 날고기이다. 어린 자신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성인 남성을 짐승으로, 폭행당한 자신을 고깃덩어리로 묘사한 것이다. 남편은 여기서 부부라는 법적 관계를 남용하여 영혜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평소 언행만 보더라도 폭언을 심심찮게 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부부관계를 거부하는 영혜에게 성폭행이나 다름없는 행동을 하고 그녀를 정복했다며 좋아하는 장면이 나온다. 선혈이 낭자한 꿈이라도 악몽은 깨고 나면 그만이지만, 현실에서 가해지는 폭력은 꿈보다 더 무서울 것이다.

    

 

 

4. 식물이 되고 싶었던 여자

육식은 남성성, 채식은 여성성에 대비될 수 있는데, 소설은 폭력에 대한 이야기 뿐 아니라 여성주의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환경운동과 여성주의를 합친 사상을 에코페미니즘이라 부르는데, 기존의 페미니즘이 남성에 대한 직접적인 저항을 보였다면 에코페미니즘은 여성의 신체나 성격을 대지화하거나 여신화하는 방법으로 부드럽게 저항한다. 김선우 시인이나 문정희 시인이 에코페미니즘적 작품을 창작하는 대표적인 문인이다.

<몽고반점>에서 몸에 꽃을 그린 영혜를 보고, 필자가 즐겨 찾는 한 SNS계정이 떠올랐다. 자신을 플라워 아티스트라고 표방하는 여자 플로리스트의 계정인데, 처음에는 꽃잎으로 작품을 만들어 사진이나 영상을 촬영해 계정에 올리는 등 평범한 작업 활동을 했다. 점점 구독자 수가 늘어나자 꽃잎을 비키니에 붙이고 촬영하는 등 과감해지다, 성기나 정액을 상징하는 요소를 쓰며 작품에 성적인 코드를 더 노골적으로 집어넣었다. 영혜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그렇듯, 구독자들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비판과 가끔 도를 넘어선 비난을 한 것은 물론이다. 상처받는 듯해도 개의치 않고 성적인 것도 꽃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을 뿐이라며 자신의 예술관을 버리지 않았다. 어쩌면 그녀도 식물이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영혜도 채식을 통해 자신을 식물성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어린 시절, 자신의 다리를 문 흰둥이를 아버지가 잔인하게 도살하고 자신에게까지 먹인 경험은 육식에 대한 큰 트라우마를 불러일으켰고, 가부장적인 남편을 만나자 더 심해졌다. 육식 트라우마가 꿈으로 나타난 후, ‘샤브샤브용 쇠고기와 돼지고기 삼겹살, 커다란 우족 두 짝, 위생 팩에 담긴 오징어들, 시골의 장모가 얼마 전에 보낸 잘 손질된 장어, 노란 노끈에 엮인 굴비들, 포장을 뜯지 않은 냉동만두와 내용물을 알 수 없는 수많은 꾸러미들을 남편이 보는 앞에서 전부 버린다. 남편은 영혜에게 있어서 육식으로 대비되는 인물인데, 그의 앞에서 고기를 버리는 것은 남편을 벗어나고 싶다는 것을 암시한다.

 

플로리스트 여성도 가슴을 드러내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고 가끔 누드 사진으로 작품을 만들었던 것처럼 영혜도 자신의 가슴을 브래지어 속에 가리지 않고 드러내고 싶어 한다. 그녀의 남편은 연애시절에 무언가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해석했지만 식물성에 가까운 영혜는 동물적 본능으로서의 성관계와 어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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