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미녀는 석류를 좋아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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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러블리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11-17 19:56 조회4,050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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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아래에 죽은 듯이 누워있던 석류 청은 탄산수를 만나자
생기를 얻고 얼음 사이를 돌아다녔다. 노란 스트로우를 잔 사이로 푹 찔러 넣는, 젊은 남자 사장의 손가락이 매끈하다. 셔츠 안에 숨은 속살이
비칠 정도로, 카페 안으로 들어온 햇살은 너무나 밝다. 덕분에 근육의 자잘한 움직임이나 파란 핏줄이 더 남자다워
보인다.
“석류에이드 그란데 사이즈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목소리에 꿀을 발라놓았나 보다. 외까풀 눈에 날렵한
콧날이 오래 전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 음료 광고를 찍었던 남자 배우를 닮았다. 카페 포메그란테. 나는 이곳이 좋다. 석류음료 전문 카페가 흔치 않은데다 사춘기 시절, 석류
음료 광고를 보고 석류 알에 파묻히는 꿈을 꾸던 그 느낌이 되살아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신사역에 내려서 8번 출구로 나오면 가로수길 초입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위치에 있다. 출근할 때면 항상 이곳에서 석류 음료 한 잔과 과일 컵을 사가곤 했다.
“이따 점심 때 또 올
거죠?”
가로수길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논현동이다. 횡단보도 바로 앞 건물에 내가 관리하는 매장이 있다. 금발머리 여자가 레이스
달린 뷔스티에를 입고 수줍게 뒤태를 보여주는 화보가 걸려 있다. 나도 미소를 지어본다. 쇼 케이스 안 얼굴 없는 마네킹들은 야시시한 색의 속옷을
입고 다리를 꼬거나 발을 쭉 펴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명찰을 가슴에 달고, 아이디카드를 꺼내 찍었다. 흰색과 와인색, 검은색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고급스러운 느낌이 드는 매장 안에 은밀한 맨살을 감쌀 레이스 천들이 탐스러운 과일처럼 걸려서 누군가의 속살을 기다리고 있다. 여기는
평범한 속옷 매장과는 달리 예약제로 운영하여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속옷 피팅 살롱, 이곳에서만큼은 누구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숙녀이다.
아직 알바생이 출근하기 전이니, 마치 내가 손님이 된 것처럼 속옷을 골랐다. 출시되는 라인을 종류별로 다 골라서, 탈의실에
들어가서 옷을 벗고 서 본다. 65G컵. 갈비뼈 라인이 살짝 드러날 정도의 상체에 자연스러운 곡선을 그리는 동그란 가슴이 붙어있었다. 5학년 때
처음 몽우리가 생길 때도 이만큼 자랄 줄은 몰랐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크기로 자라려니 막연히 생각했지만, 2차 성징이 시작되며 갑자기 불어난
살 때문에 커진 줄 알았다. 다이어트를 해도 가슴은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내가 내세울 건 가슴밖에 없다고 남들이 욕을 해도, 너만은 내 곁에
붙어 있었으면 좋겠다.
예약한 사람만 누를 수 있는 벨이 울린다. 옷을 다시 입은 채 문 앞으로 가서 고객을 맞이했다. 오늘
오전에 예약한 모녀였다. 루이비통 백팩을 멘 중고등학생 남짓의 여자아이가 구찌 선글라스를 끼고 샤넬 백을 든 엄마의 손을 잡고 들어왔다. 아이의
개교기념일을 맞아 학원 시간 전에 일찍 왔다고 했다. 보정속옷 브랜드의 특성상 브래지어 단품 하나가 10만 원 정도라 사회생활을 시작한 여자들이
주 고객이지만, 간혹 강남 일대에 사는 사모님들이 딸의 예쁜 가슴을 위해 피팅 살롱을 찾는 일도 있었다. 우리 세대 부모님들은 브래지어 사이즈에
대해 무지해서 시장 통에서 파는 A컵 브래지어를 대충 사서 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조금 크다 싶으면 B를 사주고 나처럼 육안으로 봤을 때 꽤
크면 C컵 혹은 D컵을 입혔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시대를 잘 만난 것 같다. 요즘은 엄마들이 딸 가슴에 신경을 많이 쓰는 추세이다. 우리 엄마도
그런 어머님들처럼 내 가슴을 예뻐 해주고 자신감을 심어주셨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지 친구들이 다 스포츠 브라를 뗐다고 어찌나
성화인지. 괜찮은 거 골라줘봐요.”
요즘 아이들은 교복 입는 나이까지 스포츠 브래지어를 착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속옷으로 모아 주고
받쳐 주지 않으면, 가슴이 처지고 벌어지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아직 어린 친구니까 보정속옷 입문 라인을 추천했다. 여기서 가장 압박이 없고
부드러운 제품이었다. 10대까지는 압박을 하면 가슴이 잘 성장할 수가 없기 때문에 너무 모아 주는 힘이 강한 속옷은 추천하지 않는다. 아이를
피팅룸으로 데려가 속옷 입는 것을 도와줬다. 주니어 브래지어를 뗀 지 얼마 안 된 터라 살짝 서툰 것 같았다. 75C컵. 또래에 비해 작지 않은
편이다.
“얘가 C컵이라고요? 그럴 리가 없어요. 아니, 애들 속옷은 그냥 눌러주는 거 아녜요?”
“죄송하지만 저희
브랜드에서는 10대 전용 라인은 따로 출시되지 않고 있고요, 눌러주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에요. 가슴의 형태를 잘 잡아주면서 모아 주는 것이
중요하죠.”
이분도 딸의 가슴사이즈를 부정하고, 자고로 여자의 가슴이란 무조건 억눌러야 하는 존재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이
어머님이 계속 내 말에 반박을 하는 사이, 매장에 달린 모니터에선 속옷을 제대로 입는 방법에 대한 영상이 계속 나온다. 그녀는 행거에 걸린
브래지어를 색깔별로 꺼내들고 와서, 피팅룸 거울에 비친 자신을 향해 헤헤 웃으며, 속옷을 입고 벗기를 계속 반복했다. 차분한 색상의 겉옷과는
달리 골라도 꼭 야시러운 색상만 골라놓고는, 남편이 좋아할 거라느니 한참을 떠들며, VIP라는 글자가 선명히 박힌 신용카드를 지갑에서 꺼내 결제를 마쳤다. 엄마의 양손에 묵직하게 들린 쇼핑백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는 딸아이는 작은 속옷이 답답한지 가슴 쪽을 계속 만지고
있었다.
유튜브에 접속해서 모니터에 띄울 영상을 찾았다. 브랜드 홍보영상 외에도 고객들이 지루할 틈이 없도록 유튜브에서
수시로 새로운 영상을 찾아서 띄워야 한다. F컵이나 G컵 여자들이 나오는 케이블 프로 재방송 같은 것들이다. 이번에는 한국인인데도 미국에서도
속옷 사이즈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가슴 크기를 자랑하는 싱어송라이터의 뮤직비디오를 띄워 보았다. 가슴을 강조하는 영상으로는 아주
그만이다. 방송에서 가슴 크기가 알려진 사람 중에서 가장 큰 사람이 J컵인데 이 여가수는 어느 정도의 가슴 크기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퓨어(Pure)’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가슴이 푹 파인 드레스를 입고 무표정한 얼굴로 과일을 써는 장면만 나오는 영상인데, 제목은 어울리지 않게
이다. 하나님께 사랑받는 엄마의 딸은 너무나도 힘들단다. 졸린 듯한 창법으로 시종일관 영어로 중얼거려서 무슨 소리인지는 또렷하게 들리진 않지만,
나도 하나님께 사랑받지만 가슴만은 작은, 그런 엄마의 딸로 사느라 꽤 힘들었다.
엄마는 상체에 대해 콤플렉스가 심하셨다. 작은
가슴도 가슴이지만, 무엇보다도 어깨 골격이 살짝 있었다. 그때 기준으로는 큰 키에 처녀 적에는 지금보다 살집이 있었다니까 어깨와 등판이 더더욱
넓어보였을 것이다. 50이 넘어 깡마른 지금까지도 상체가 커 보이는 모든 요인을 달가워하지 않으신다. 가슴, 등판, 팔뚝 살……. 나는 이
중에서 커다란 가슴을 갖고 있었다. 엄마는 당신의 콤플렉스를 내게 그대로 투사했다. 160도 채 안 되는 키에, 여리여리한 뼈대가 엄마의
이상향이었지만 유전자가 어딜 가랴. 친가와 외가를 통틀어 뼈대 자체가 마른 여자는 거의 없었다. 특히 고모 쪽은 골격이 더 있었다. 나 또한
어깨 골격을 살짝 가지고 태어났다. 다행히 둥글고 살쪄 보이는 어깨가 아닌, 각이 지고 뼈대가 드러난 어깨이며 골반과 대퇴골도 같이 발달해서 몸
균형이 깨지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뿐인 딸내미의 어깨와 가슴만 눈에 들어오시는지.
초등학생 때 뚱뚱했을 때도 가슴
때문에 유달리 체격이 커 보였던 것 때문에 아직도 그런 것 같다. 최대 체중을 찍었던 때가 아마 2002년 월드컵 때였을 것이다. 온 가족이
빨간 티셔츠를 입고 TV앞에 옹기종기 모여서 응원을 했다. 대한민국을 외치며 겨우 닭 날개 하나를 집어드는데, 엄마가 손등을 찰싹 때렸다.
아빠가 그런 엄마를 말렸지만 엄마는 완강했다.
“얘 볼 때면 당신 둘째누나 생각난다니까. 체격이……. 야식 먹고 더 살찌면
어떡해.”
이날 이후로 축구가 싫어진 것은 물론이고, 이런 골격을 물려준 집안 여자어른들이 원망스러웠다. 그래도 큰 가슴 하나는
스스로 챙겨서 달고 나온 것이 참 다행이었다. 하지만 당시 내 가슴이 큰지 미처 알고 있지 못했던 나는 눈물을 흘리기만 했었다.
집안
내력인 작은 가슴을 타고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엄마와 이모는 가슴이 작으시지만 외할머니는 크셨다고 하는데 격세유전인지도 모르겠다.
고모들도 체격만 크다뿐이지 가슴 자체가 큰 편은 아니다. 큰집은 나만 유일하게 딸이니 잘 알 수가 없다. 큰집에 친척언니나 여동생이 있었더라면
나처럼 가슴이 컸을까. 나 혼자만 화성인이니, 집안에 큰 세계를 이해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여름휴가를 가기 바로
전날이었다. 엄마는 옷장에서 남방, 티셔츠 등 이것저것 옷을 꺼내 입혀줬지만 체격 때문에 맞는 옷이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아이고, 젖만 커서는…….”
그러다가 말이 또 공부 이야기로 튀어서 날 혼낼 게 뭐가 있었단 말인가. 체격이 크면
덩치 값을 하라며 날 몰아세우는데 외모와 인성이 무슨 관련이 있는지. 수능이 끝나기 전까지 뚱뚱했다가 다이어트를 했다가 다시 살이 붙는 것을 몇
번이나 반복했던 터라 예쁜 옷을 사서 입을 수도 없었다. 초등학교 입학한 이후로 치마는 꿈도 못 꿨던 것은 물론이고, 마른 여자애들이 예쁘고
하늘하늘한 옷을 입고 다닐 때도 난 남자 옷인지 여자 옷인지 헷갈리는 것들만 입었다. 난 가슴이 크고 어깨가 넓어 여성스러운 옷이 안 어울린다고
엄마가 쐐기를 박았기 때문이었다. 가슴이 살짝이라도 드러나는 옷은 무조건 금지였다. 집 근처 미용실에 갈 때 청바지 위에 하얀 티셔츠를 입으면,
꼭 야상이나 재킷으로 가려야만 했다. 중학교 2학년 때 큰고모 환갑날이던 어느 날, 단정하게 교복을 입을까 하다가 평범한 후드 반팔티를 골랐다.
“너무 출렁거려서 안 돼! 사돈댁 식구들 다 오시는데 창피하지도 않니?”
마침 그 다음날이 일요일이라, 당시
대학생이었던 사촌언니에게 빌린 브이넥 원피스를 입고 엄마가 다니는 교회에 찾아갔다가 등짝을 맞을 뻔했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어서 그나마
나아졌다. 엄마의 눈치를 신경 쓰지 않고 예쁜 옷들을 맘껏 입을 수 있었다. 그래도 습관이 무서운지, 화려하고 몸매를 드러내는 옷은 옷장에
돌려놓기를 여러 번 반복하다가 겨우 입는 날도 적지 않았다.
어느 날, 이모 집에 놀러갔을 때 셋이 TV를 보다가 갑자기 외모
이야기가 화제로 흘러갔다. 나와 친척언니는 서로의 장점을 나눠 가졌다. 내가 큰 가슴과 나름 큰 키를 가졌다면, 언니는 나보다 하얀 피부와 작은
키에 비해서 긴 다리를 가진 것처럼 말이다. 문득 엄마가 내 가슴을 예뻐해 준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옷을 사러 가면 나름 몸매
칭찬을 듣는데, 단지 엄마의 이상향이 아니라는 이유로 징그럽거나 부담스러워하기만 하셨다. 돈을 들여 교정에 성공하고 나니 더 욕심이 커졌는지,
화장하고 다녀라 피부가 그게 뭐냐, 편한 옷만 입지 마라……. 안 그래도 뚱뚱했던 때가 있어 외모콤플렉스가 심했던 내게 굳이 그래야만 했을까.
사귀었던 남자친구조차 내 콤플렉스에 약을 발라 주기 위해 노력하는데 왜 엄마가 그러셨는지는 갓 서른이 된 지금까지도 아직
모르겠다.
아르바이트생이 올 때가 다 되었다. 서울에서 가까운, 경기도의 한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하는 학생인데 속옷에도
관심이 많았다. 예전에 일하던 다른 속옷 매장에서 같이 근무한 언니의 후배라고 하는데, 이 친구도 나중에 졸업을 하면 속옷 쇼핑몰을 런칭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사실 혼자 관리해도 무리가 없는 매장이고 아직 학기 중이다 보니 수업 시간에 맞춰 최대한 편의를 봐 주기로
했다. 출근 시간은 대중없어도 하루에 4~5시간만 하도록 속옷에 관심을 갖는 여학생이 흔치는 않고, 나 또한 대학생 때 학기 중에 아르바이트를
할 곳이 마땅치 않아 항상 생활비가 쪼들렸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내 시를 좋아한다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들어 계속 쓸 생각이다. 전공과 다른
꿈을 꾼다는 그녀는 행복할까. 지금 그 나이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다. 나도 그 때는, 특히 대학 신입생 시절에는 모든 것을 다 잘 할 줄
알았다.
내가 그녀와 비슷한 나이였을 때, 문예창작학과에 다니며 소설가를 꿈꿨고, 시도 가끔 창작했었다. 1학년 때 과 수석을 해서
성적 우수 장학금을 탔으며, 작은 공모전과 과 공모전에서 입상도 했었다. 딱히 교수님들께 혹평을 받은 적도 없었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여학우들이 보기에는 다소 외설스러웠다는 것이다. 내 작품을 특히 싫어하던 몇몇 여자동기들은 내가 평범한 브이넥 티셔츠를 입고 등교했을 때도
가슴골이 다 보인다며 수군거렸다. 가슴이 도드라지게 큰 여자가, 그런 내용이 담긴 작품을 쓴다는 것이 누군가에게 불온해 보이는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그래도 열렬한 독자는 있었다. 나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는 전공 교수님들이랑, 일부 남자 선배들이 있어서 작품의 색깔을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
유일하게 간직한 시가 <자존심>은 시화전 작품 중 유일하게 챙겨온 것이었다. 그대로 간직해 코팅한 채로
카운터에 걸어두었고, 캘리그래피 작품으로 다시 옮겨 사무실 테이블 유리 사이에 끼워두었다. 이 작품은 조금 부끄러운 내용을 담고 있긴 하나, 그
중에서도 주제의식이 살아 있는 것 같아 가장 마음에 든다.
탄산이
빨갛게 피어오를 때
길 잃은
와이어와
해진 천의 틈새로
석류알들이 쏟아져 내리지
엎질러진 가슴을
팔짱으로 끌어안고
묘비 없는 무덤들 사이에
나를 감추지
아이라인 짙은 여자가
내 손을 잡아채며 속삭이지
겉보다 속이 아름다워야 진짜 여자야
거울
속, 옷 벗은 나는
어느새 내 몸보다 커버린
또 다른 여자
그 무거운 걸
여태 끌어안고 있었니
거울 속 나의
목소리
꼿꼿이 편 허리
노을빛이 에이드 컵에
오롯이 담기는 순간
또각거리는 하이힐 소리
아이라인 짙은
여자를 안고
도로를 가로지르고
네온사인 불이 켜진 거리,
저 멀리서
누군가는 소주잔을
기울이겠지
“점장님, 그게 뭐예요?”
출근해서 사무실로 올라온 알바생이 내 시를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여기 오기 전에 문창과에 다녔거든. 그때 썼어.”
“오오, 대단한데요? 뭔가 석류에이드
생각난다.”
추억 팔이나 하자는 명목으로, 유튜브에 접속해서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 CF영상을
띄워본다. 꽤 오래 된 광고인데다 지금 보기엔 다소 촌스럽지만 CM송만큼은 입에 착착 감긴다. 흰 슈트를 입고 입술을 붉게 칠한 남자배우가
미녀들 사이에 둘러싸여, 흰 그랜드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 자꾸자꾸 예뻐지면
나는 어떡해, 거울 속에 나를 보면 정말 행복해…….”
노래를 따라 흥얼거려본다.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 음료가 한창 인기를
얻을 무렵, 나는 초경을 맞았었다. 꿈속에서 남자 배우와 연탄곡을 치다가, 남자 배우의 손이 내 가슴 몽우리로 옮겨갔다. 아래가 젖는 것을
느끼며 눈을 반짝 뜨니, 이불에 석류 즙이 떨어져 있었다. 어쩐지 남자 배우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 몽우리가 따끔따끔하더라니, 그날 내
책상에 엄마의 선물상자가 놓여 있었다.
-미녀야, 여자가 된 것을 축하해!
위스퍼 생리대 박스 옆에 놓인 선물상자를
열어보니, 흰 종잇조각들 위에 주니어용 스포츠 브래지어가 사뿐히 앉아 있었다. 연분홍색 바탕에 헬로 키티 리본이 그려진 브래지어를 입고, 순면
100프로처럼 폭신폭신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점심시간이 되어, 카페 포메그란테로 갔다. 너무 무거운 음식은 부담스러울 것
같아서 음료 한 잔과 케이크를 시켜 먹을 생각이었다. 그 중 ‘포메그란테 워터’라는 신 메뉴가 눈에 띄었다. 탄산수 안에 석류 알갱이들을 넣는
음료라는데 석류에이드와 무엇이 다를까 싶어 호기심에 시켜보았다. 밋밋한 와중에 톡 쏘는 맛만 있을 줄 알았는데, 석류즙을 살짝 넣은 것 같은
탄산수는 오히려 상큼했다. 사장은 내 시를 읽어보며 미소를 띠고 있었다. 나처럼 과거에 문학 공부를 했다던 사장은 이곳에서 유일하게 말이 잘
통한다.
“이거 볼수록 공감 가네. 강 점장님 매장이랑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잘 어울린다, 공감이 된다……. 글
쓰는 사람에게 있어선 최고의 칭찬이다. 글로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하지만 내 글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얻기엔 조금 힘든 것이 있었다. 특히
여학우들이 보기에는 더 그랬다.
“뭐야, 그 친구들이 강 점장 질투했던 거네. 여자 중에서 그런 거 아무렇지 않게 쓰는 사람들
흔치 않아요. 교수님들 평가가 진짜라구요.”
어린왕자가 보아 뱀 그림을 처음 알아봐주었을 때, 파일럿의 마음도 나랑 같았을까.
사장의 팔목에 새긴 날개 모양 타투가 오늘따라 더 빛나는 것 같았다. 깃털 한올한올을 감상할 새도 없이, 예약 손님이 또 올 시간이라 서둘러
매장으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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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깅유님의 댓글
허깅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소설은 쓴다는 것은 그 만큼 내면에 넘치는 상상력과 인물의 배경과 심리를 꼼꼼히 그려가며 관계와 사건을 통한 소설에서 전하고 싶은 메세지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ㅎㅎ 어려운 길을 가시네요^^ 화이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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