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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풀밭은 사라지고 핏물만이 고여(채식주의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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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러블리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12-16 16:05 조회3,5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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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채식과 육식의 경계

소설가 한강의 연작소설 <채식주의자>가 한국인 최초로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수상하여 화제가 되었다. 작가가 실제 20대 중반에 채식을 했던 경험이 있고, 주변 사람들이 그것을 이상하거나 특별하게 여기는 모습을 보고 소설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채식주의자> 연작은 창작과비평에 발표된 <채식주의자>,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몽고반점>, 문학 판에 발표한 <나무 불꽃>으로 이루어져있다. 이 세 작품을 장편처럼 묶어서 출판한 소설인데, 우리나라의 특유 정서가 많이 녹아든 작품이 외국에서 인정받았다는 사실은 국내의 모든 작가와 문학도들에게도 큰 자랑거리가 되었다.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나 소수의 의견이 존중받지 못하는 것은 어느 사회에서나 볼 수 있고, 그것이 국경을 넘어 모든 독자들에게 공감을 주었기 때문인 것 같다.

<채식주의자>가 화제를 몰고 온 또 다른 이유는, 한때 화두로 떠올랐던 채식, 웰빙 열풍이 요즘은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채식은 건강식이고 육식은 건강하지 못한 식사로 여겨왔지만, 최근에는 채식의 반란이라며 무분별한 채식이 더 건강을 해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사람들의 식성은 다양한데 단순히 육식과 채식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을까? 소설에서도 채식육식과의 경계를 극명히 나누고 있지만 단순히 한 사람의 음식취향을 말하고자 하는 것을 넘어 상징성을 부여했다. 동물성과 식물성의 원초적인 특성을, 권위주의적이고 보이지 않는 폭력이 자행되는 사회를 비유한 객관적 상관물로 쓴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세속적인 것을 육()적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채식주의자>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주인공 영혜는 동물적이고 육적인 삶에서 탈피하기 위해 채식주의자가 되고, 스스로 식물이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2. 줄거리와 플롯

<채식주의자>연작은 표제작인 <채식주의자>를 비롯해 <몽고반점>, <나무 불꽃> 3편의 소설로 이뤄져 있다. <채식주의자>는 남편의 1인칭 서술과 영혜의 독백이 교차해서 나오는 나선형 서술 방식을 하고 있고, 나머지 두 작품은 작가 관찰자 시점으로 형부와 언니의 입장에서 서술된다. 모든 서술자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영혜를 바라본다.

평범한 주부인 영혜는 어느 날 꿈을 꾸고 채식주의를 선언한다. 어린 시절 개 잡는 장면을 보고 육식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고, 결혼 후에도 남편의 가부장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에 환멸을 느껴 그 내면세계가 핏덩이가 비치는 꿈으로 나타난 것이다. 남편과 친정식구들은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육식을 강요하고, 영혜는 이에 대한 반발로 손목을 긋는다.

2부인 <몽고반점>은 형부의 시점으로 서술된다. 비디오 아티스트인 형부는 영혜가 20살이 넘어서까지 몽고반점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아내에게 듣고, 강력한 영감을 받는다. 그는 영혜의 몸에 몽고반점을 중심으로 꽃 그림을 그리고, 비디오에 담는다. 거기서 만족하지 못하고 후배에게 그녀와 관계하라고 요구하기도 하며 자신이 몸에 직접 꽃을 그리고 영혜와 관계를 맺는다. 인혜에게 불륜장면을 들킨 두 사람은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영혜가 정신병원에 수용된 후의 이야기는 3부인 <나무 불꽃>에서 다룬다. 인혜는 남편과는 결별하고 영혜를 끝까지 돌보게 된다. 동생이 비록 자신의 남편과 불륜을 저질렀지만 자신의 가족이고 자신과 비슷한 삶을 살아온 한 여자이기 때문이다. 영혜는 자신이 나무가 되었다고 믿으며, 육식뿐만 아닌 모든 음식을 거부한다. 인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영혜는 영양부족이 생겨서 큰 병원으로 옮겨가게 된다.

전체적인 플롯은 변모의 플롯이라고 할 수 있다. 변신의 플롯과는 달리 외적인 변화보다 내면 심리의 변화에 더 치중하며,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에 대해 다루기 때문이다. 평범해 보이는 한 가족이 영혜의 채식주의 선언으로 인해 갈등을 겪고, 그로 인해 가족들의 이기적이고 가부장적인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소설은 몸의 플롯과 마음의 플롯을 잘 혼재시킨 형태이다. 영혜의 독백 서술과 그녀를 관찰하는 세 인물의 심리 변화를 잘 보여주기 때문에 마음의 플롯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지만, 온 몸으로 채식주의를 선언하고 브래지어를 벗어던지는 영혜의 행동을 현실감 있게 그리고 있어 몸의 플롯 형태도 띠고 있다. 평범했던 인물들의 삶이 파괴되는 과정을 나타내어 긍정적인 초반부에서 부정적인 결말로 가는 가을의 미토스이다.

 

    

 

3. 인물과 갈등 구조

 

(1)영혜

연작소설 3편의 주인공. 평범한 가정주부 역할을 잘 수행해왔지만, 핏덩이가 나오는 꿈 때문에 돌연 채식주의자가 된다. 남편이랑 친정식구들과 계속 갈등하던 도중 그들의 이기적이고 가부장적인 모습에 환멸을 느끼고 결국 자살기도를 한다. 이혼하고 혼자 살며 언니 부부의 보살핌을 받는다. 성인이 되어서까지 몽고반점이 남아 있는 것을 안 형부가 그녀를 자신의 아트비디오에 출연시키고, 몸에 꽃을 그린 채로 형부와 관계를 갖게 된다. 두 사람을 목격한 언니가 그녀를 시설 좋은 정신병원에 수용하지만 거식증에 걸리고 자신이 나무라고 믿게 된다. 영양 부족으로 빈사 상태까지 이르게 된다.

 

(2)남편

<채식주의자>1인칭 서술자. 과분하거나 튀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다.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적당한 대학을 졸업하고 적당한 회사에 취직해서 평범하게 사는 듯하지만 속에 열등감이 내재되어 있다. 아내로서 충실한 역할 수행만을 원할 뿐 영혜를 존중하고 따뜻하게 대해주는 모습을 전혀 볼 수 없다. 영혜가 채식주의자가 되자 가부장적인 사상과 폭력성을 더 드러내며 아내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없다. 영혜가 자살기도를 한 후 그녀와 결국 이혼한다. ‘핏물고깃덩어리를 상징하는 인물로 영혜와 강한 적대관계를 형성한다.

 

(3)인혜

<나무 불꽃>3인칭 서술자. 영혜의 언니이며 소설에서 유일하게 영혜를 이해하고 끝까지 돌봐 주는 인물이다. 화장품 매장을 확장하고 새 집으로 이사하는 등 겉으로 보기엔 넉넉하고 화목한 가정을 꾸린 듯 보이나, 무능력한 아티스트인 남편 대신 생계를 꾸려야만 하는 입장이다. 그녀 역시 남편과 사랑 없이 결혼했으며, 일 때문에 밖으로만 도는 남편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 여자 혼자 몸으로 동생과 아들을 돌봐야 하는 삶을 비관하며 자살 생각을 할 정도로 삶이 무너지지만 끝까지 동생을 책임지고 살리려 노력한다. 영혜에게 조력자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으나,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으로부터 구해 줄 수는 없기 때문에 조력자로서의 역할은 크지 않다.

 

(4)형부

<몽고반점>3인칭 서술자. 미대를 졸업하고 비디오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지만 수입이 없다시피해서 가계에 전혀 보탬이 되지 못한다. 우연히 아내에게서, 처제가 20살 때까지 몽고반점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영감을 받아 영혜를 비디오에 출연시킨다. 후배에게 영혜와 관계를 직접 갖도록 요구하고 결국 심신미약자인 처제와 선을 넘으려고까지 한다. 인혜에게 발각되어 이혼당하고 영혜와 함께 정신병원에 끌려가게 된다. 영혜에게 식물이 되고 싶은 욕구를 일깨워주는 매개자로 작용하지만, 그녀를 진심으로 포용하려 하지는 않고 자신의 예술을 위한 도구로만 본다. 불륜을 들킨 후 인혜와 적대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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